대가야의 고령(高靈), 역사를 쓰다
대가야의 시작은 이 땅에 살기 시작한 여느 부족과 다를바 없이 소소하였습니다. 사람들은 무리를 이루며 살기 시작했고, 이 무리들이 정착하면서 마을(취락)을 이루었습니다. 신석기시대에 등장한 취락은 청동기시대에 접어들면서 농업의 발달, 특히 쌀농사의 시작과 잉여생산물의 발생, 인구의 증가 등 여러 요인에 의해 다수의취락이 결집되거나 혹은 밀접한 관계를 맺으면서 하나의 정치적, 경제적 단위를 이루는 읍락으로 이루어 졌습니다. 읍락은 다시 철기 문화의 발달과 함께 여러 읍락이 결합되면서「국(國)」이라기보다 큰 단위의 정치체로 형성이 되었으며, 대가야 또한 그 중의 하나가 됩니다.

4세기 중엽
고구려군의 낙동강 유역 진출 이후 가야 여러 나라들 가운데에서 대가야가 점차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하여 5세기 후반 경에는 가장 두드러진 세력으로서의 모습을 보입니다. 고구려군에 격파된 김해세력(금관가야)은 그 후 쇠퇴하게 되었으며, 전쟁의 피해를 입지 않은 고령을 중심으로 하는 내륙지방의 대가야세력이 후기가야를 주도하기 시작하였습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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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01. 결정적 발전 계기
- 그 중 대가야의 결정적 발전 계기가 된 것은 고령(대가야의 도읍지)지역의 지리적 잇점을 안고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. 고령은 남해안에서 낙동강을 이용해 거슬러 올라 갈 수 있는 지역입니다. 그리고 고령은 거창, 함양 등의 내륙지역과 통할 수 있으며, 더 나아가 소백산맥을 넘어 무주, 장수, 임실, 남원 등으로도 통할 수 있습니다. 그리고 북으로는 성주, 김천을 거쳐, 추풍령을 넘어 황간, 영동으로 나아갈 수 있는 지역입니다. 동으로는 낙동강을 건너 곧 바로 대구로 나아갈 수도 있습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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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02. 지리적 이점
- 고령지역의 이러한 지리적 이점이 곧 5세기 이후 가야에서 가장 강력한 지역 국가로 성장할 수 있었던 기반이었습니다. 지리적 이점으로 인해 교역을 원활하게 할 수 있었고, 뿐만 아니라 백제 등을 통한 선진 문물의 흡수도 다른 가야국들에 비해 빨랐습니다. 대가야의 주요 교역품은 합천 야로지역에서 생산되는 쇠와 안정된 농업기반을 바탕으로 생산된 농산물이었습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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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03. 성장기반
- 대가야가 가야 후기 강력한 국가로 성장 할 수 있었던 기반은 유리한 교역로의 확보를 통한 철의 수출과 안정된 농업기반에 있었다고 하겠습니다. 그리고 외부로부터 그러한 것을 지킬 수 있었던 강력한 방어력을 갖추고 있었다는 점을 들 수 있겠습니다. 지산리 고분군과 같은 대형 고총고분군은 대가야의 발전상을 가장 잘 보여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.
- 대가야는 자체 발전을 바탕으로 주변 가야지역으로의 진출도 단행하였고 토기를 비롯한 고고학적 양상들은 대가야가 5세기 중엽에 황강 유역 및 남강 상류역을 포괄하는 연맹체의 맹주국이 되었고, 5세기말에는 그 대부분 지역을 간접 지배하는 단계로까지 발전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고 있습니다.
대가야국 연대기
시대 | 년도 | 내용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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대가야 | 42년 | 정견모주(正見母主)라는 가야산신과 이비가(夷毗訶)라는 천신 사이에 태어난 뇌질주일(惱窒朱日)이 대가야의 시조 이진아시왕(伊珍阿豉王)이 되었다는 건국신화가 전해옴 |
400년 | 가야 · 백제 · 왜가 서로 힘을 합쳐 신라를 공격함 | |
479년 | 하지왕(荷知王)이 중국 남제에 사신을 보내 ‘보국장군본국왕(輔國將軍本國王)’이라는 작호를 받아옴 | |
481년 | 고구려와 말갈군이 신라를 공격하자 대가야와 백제가 신라를 구해줌 | |
522년 | 이뇌왕(異腦王)이 신라 왕족 여자와 결혼함 | |
532년 | 금관가야가 신라에 멸망함 | |
551년 | 우륵과 그 제자들이 신라의 진흥왕 앞에서 가야금을 연주함 | |
554년 | 백제와 힘을 합쳐 관산성에서 신라와 싸웠으나 패배함 | |
562년 | 제16대 도설지왕(道設智王)때 신라 진흥왕의 공격으로 멸망함 | |
통일신라 | 757년 | 고령군으로 이름이 바뀜 |
고려 | 940년 | 경산부(京山府)에 속함 |
1175년 | 감무(監務)가 내려와 다스리기 시작함 | |
1390년 | 박위(朴葳)장군이 왜구를 격파함 | |
조선 | 1413년 | 고령현에 현감이 내려와 다스리기 시작함 |
1593년 | 임진왜란 의병대장 김면(金沔) 장군의 의병활동 | |
1597년 | 정유재란 고령대첩 | |
근 · 현대 | 1895년 | 경상도 고령군으로 됨 |
1896년 | 경상북도 고령군으로 됨 | |
1979년 | 고령면이 고령읍으로 승격되어 1읍 7면이 됨 |